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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첩

퇴계이황과 두향의 슬픈 사랑

by 권석낙 2020. 1. 9.
      도산서원이라면 퇴계 이황선생이 율곡 이이와 더불어 조선에 
      성리학(유학)을 꽃피우게 한 
      가장 대표적인 학자로 주자(朱子)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적 
      사상을 계승하여 그의 사상으로 발전시킨 성리학자 아니던가
      1501년 연산군 7년 경북 예안현(오늘날의 안동시 예안면)에서 
      이식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답디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마흔 살의 나이로 
      사망하여,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열두 살 때부터 숙부인 
      송재 이우(李堣)에게서 학문을 배웠다는데. 송재는 그때      
      관직에 있어 바쁜 일과 중에도 퇴계를 가르쳤다니 교육이야 
      말로 백년지대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퇴계 이황과 두향이의 슬픈 사랑
      이황(李滉) 퇴계(退溪)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                             
      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다.                     
      그리고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선생이었던 지라 한동안은                   
      두향의 애간장을 녹였었다.                                                        
      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은                  .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              
      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움 뿐이다.』 .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저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 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
      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前身應是明月幾生修到梅花).
      퇴계 선생의 시 한 편이다.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
      오늘날도 퇴계의 후손들과 유학자들이며 향토 사학자들 까지도               
      퇴계의 제례를 지내고나면 의례 충북 단양의 강선대에 있는       
      두향의 묘를 참배하며 두향제를 지낸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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