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1745-1806)의「주상관매도」
멀리 높은 산언덕에 매화가 피어있다. 노인은 작은 배에 비스듬이 앉아 종자와 함께 멀리 매화를 바라보고 있다. 노인은 주황색 옷을 입고 있으며 배 위에는 조촐한 주안상이 차려져있다.
높은 언덕에 피어있는 매화는 상단 위쪽에, 노인과 종자가 탄 배는 하단 아래쪽에 치우쳐 있다. 그리고 중앙 상단 오른쪽에는 화제가 써 있다. 나머지는 전부가 텅 빈 여백뿐이다. 여백이 하도 넓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老年花似霧中看(노년화사무중간)
노년에 보는 꽃은 안개 속인 듯 희뿌옇게 보이누나
「주상관매도」의 화제이다. 이 화제는 두보의 7언율시「소한식주중작(小寒食舟中作)」‘소한식날 배 위에서 짓다.’ 중 4행의 구절이다. 이 시는 두보가 59세의 나이로 죽던 바로 그 해에 쓴 시이다. 당시 만년의 고독하고 쓸쓸한 심경을 표현한 시이다.
배위의 노인은 만년의 두보이면서 김홍도 만년의 자신일 것이다.
두보의「소한식주중작(小寒食舟中作)」전문이다.
佳辰强飮食猶寒(가신강음식유한) 명절이라 억지로 먹자니 음식은 차고
隱几蕭條戴鶡冠(은궤소조대할관) 쓸쓸히 할관을 쓰고 안석에 기대앉아 바라보니
春水船如天上坐(춘수선여천상좌) 봄물 위에 뜬 배는 하늘 위에 앉은 듯
老年花似霧中看(노년화사무중간) 노년에 보는 꽃은 안개속인 듯 희뿌옇게 보이누나
娟娟戲蝶過閒幔(연연희접과한만) 사뿐 사뿐 노는 나비 한가한 장막을 지나가고
片片輕鷗下急湍(편편경구하급단) 여기 저기 갈매기는 급한 여울물에 내리누나
雲白山靑萬餘里(운백산청만여리) 구름 희고 산 푸른 만여 리 길이건만
愁看直北是長安(수간직북시장안) 시름에 잠겨 바라보는 먼 북쪽 거기가 바로 장안이라네
배와 산언덕 사이는 상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두보는 만년에 배를 타고 양자강을 따라 방황하다 병을 얻어 상강의 배안에서 5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홍도 역시 정조의 총애를 받아 예술가로서 화려한 삶을 살았으나 정조가 승하한 후 만년을 고독과 빈곤과 병고 속에서 지냈다. 겨우 회갑을 넘긴 나이었지만 만년의 적적하고 쓸쓸한 자신의 심경을 두보의 시를 빌려 시의도「주상관매도」를 그렸다. 그리고 흥취가 남았는지 이 시를 모티프로 해서 시조 한 수도 남겨놓았다.
단원이 남긴 시조이다.
춘수(春水)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에 물이로다.
차중(此中)에 노안(老眼)에 뵈는 곳은 무중(霧中)인가 하노라.
두보의 7언 율시「小寒食舟中作(한식 다음날 배 안에서 짓다)」의 3,4행의 구절‘ 봄물에 뜬 배 하늘 위에 앉은 듯하고, 노년에 보는 꽃은 안개 속인 듯 희뿌옇게 보이네’의 구절을 따서 자신의 만년 심경을 시조 한 수로 노래했다.
봄이 왔다.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풀려 강물이 많이도 불었다. 강물에 배를 띄워놓고 가는대로 맡겼다. 배 위에서 강물을 바라보니 물 아래는 하늘이요 하늘 위에는 물이다. 요즈음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시조는 형상 없는 그림이 되었고, 그림은 형상 있는 시조가 되었다. 시의도 말고도 화의시도 남겨놓았다.
단원 김홍도는 화가로 영.정조의 문예부흥기에서 순조 연간 초까지 활동한 조선 제일의 풍속 화가이다. 어린 시절 강세황의 지도를 받아 그림을 그렸고, 그의 추천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어 정조의 신임 속에 당대 최고의 화가로 자리를 잡았다. 산수, 인물, 불화, 화조, 풍속 등은 물론 모든 장르에 능했으며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 뛰어났다. 이런 시조도 있다.
먼 데 닭 울었느냐 품에 든 님 가려 하네.
이제 보내고도 반 밤이나 남았으니
차라리 보내지 말고 남은 정을 펴리라.
먼 데 닭이 울었느냐. 품에 든 님이 가려하는구나. 이제 님을 보내고도 밤이 반이나 남았으니 차라리 보내지 말고 남은 정을 나누고 싶구나. 새벽에 님은 그의 품을 떠났나 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아쉬워 아침까지 함께 있고 싶었나 보다. 정도 그리 많았나 보다.
삼십 대에 김홍도는 “그림을 구하는 자가 날마다 무리를 지으니 비단이 더미를 이루고 찾아오는 사람이 문을 가득 메워 잠자고 먹을 시간도 없을 지경이었다.”는 말이 전할 만큼 그림으로 높은 이름을 얻고 있었다고 한다.
조희룡의 『호산외사』에 김홍도의 모습에 대한 유명한 일화 한 도막이다.
집이 가난하여 더러는 끼니를 잇지 못하였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 한 그루를 파는데 아주 기이한 것이었다. 돈이 없어 그것을 살 수 없었는데 때마침 돈 3천을 보내주는 자가 있었다. 그림을 요구하는 돈이었다. 이에 그중에서 2천을 떼내어 매화를 사고, 8백으로 술 두어 말을 사다가는 동인들을 모아 매화음(梅花飮)을 마련하고, 나머지 2백으로 쌀과 땔나무를 사니 하루의 계책도 못 되었다.
그는 이렇게 낭만적인 예술가였지 생활력이 있는 가장은 아니었던 같다. 단원은 화가이기도 했지만 시·서에도 능했고 또한 소문난 음악가기도 했다. 아름다운 풍채에 도량도 크고 넓어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아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신선 같다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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