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學♡書堂

陋室銘 / 許筠

권석낙 2023. 9. 10. 20:27

陋室銘 / 許筠

房闊十笏, 南開二戶, 午日來烘, 旣明且煦. 家雖立壁,

書則四部, 餘一犢鼻, 唯文君伍. 酌茶半甌, 燒香一炷,

偃仰棲遲, 乾坤今古. 人謂陋室, 陋不可處, 我則視之,

淸都玉府. 心安身便, 孰謂之陋, 吾所陋者, 身名並朽.

憲也編蓬, 潛亦環堵, 君子居之, 何陋之有.

 

누추한 방에 부치다/허균

방 너비는 열 홀쯤인데 남쪽으로 문 두 짝을 내니 한낮 볕 들이쬐어 밝고 또 따사롭구나.

집은 비록 벽만 섰을지라도 책은 고루 갖추었으니, 남은 것은 쇠코잠방이 입은 이 몸,

탁문군의 짝뿐일세.

반 사발 차를 마시고 한 자루 향 사르며 한가로이 숨어 살면서

천지고금을 마음에 품었노라. 남들은 누추한 집이라 하면서 힘들어 어찌 살까

걱정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신선들이 사는 궁궐일세. 마음은 평안하고 몸은 편안하니

누가 감히 누추함을 말하는가. 내가 누추하다 여기는 것은 몸과 이름이 함께

썩어 가는 것일세.

원헌(原憲)은 쑥대로 엮은 집에서 살았고,

도잠(陶潛)도 아주 작은 집에 거했다네. 군자가 산다면,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

 

방활(房闊) : 방의 너비.

홀(笏) : 신하가 황제나 임금을 알현할 때 손에 드는 막대기 모양의 패. 길이가 두 자 여섯 치(80센티미터가량)였다.

10홀이면 세 평쯤 될 것이다.

호(戶) : 문. 출입구.

내홍(來烘) : 볕 따위가 들이쬐는 것.

후(煦) : 따스하다.

사부(四部) : 경(經), 사(史), 자(子), 집(集)으로 분류된 모든 책.

독비(犢鼻) : 독비곤(犢鼻褌)의 준말. 쇠코잠방이. 농부 등이 여름에 입는 짧은 잠방이.

문군(文君) : 문군(文君)은 탁문군(卓文君)을 말한다. 한나라 때 재상을 지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젊은 날

탁문군과 함께 살면서 주막을 차려 술을 팔았다. 이때 쇠코잠망이를 입고 주방일을 거들었다고 한다.

오(伍) : 동반자, 짝.

작다(酌茶) : 차를 마시는 것.

구(甌) : 사발. 중발(작은 사발).

주(炷) : 자루. 향촉을 세는 단위.

언앙(偃仰) : 누워서 올려다본다는 뜻으로 편안하게 한가로이 쉬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

서지(棲遲) : 벼슬하지 않고 은둔하여 편안히 삶.

누실(陋室) : 누추한 집. 공자가 구이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누추해서 어찌하시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군자가 사는 곳에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라고 답했다. 이후 누실은 예를 지키면서 은둔하여 사는 군자의 거처를 가리키는 표상이 되었다.

청도(淸都) : [초사]에 나오는 말로 옥황상제가 사는 곳을 뜻한다.

옥부(玉府) : 신선들이 사는 궁궐.

후(朽) : 썩음.

헌(憲) :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인 원헌(原憲)을 말한다.

편봉(編蓬) : 쑥대를 엮다. 원헌이 워낙 가난하여 쑥대를 엮어 문을 만들고 풀을 얹어 지붕을 만들었다는 데서 온 말. 청빈한 삶을 가리킨다.

잠(潛) : 도잠(陶潛), 즉 도연명을 말한다.

환도(環堵) : 환(環)은 둘레라는 뜻이고, 도(堵)는 길이 단위로 5판(版, 8자), 즉 40자이다.

따라서 둘레가 12미터쯤 되는 아주 작은 집을 뜻한다. 도연명은 워낙 가난해서 집이 너무 허술하여 비바람을 가리지 못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