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筆♡揮之

不似之似

권석낙 2019. 10. 21. 21:41



不 似 之 似 

蘇東坡(소동파)는, 

論畵以形似, 見與兒童隣. 

賦詩必此此詩, 定知非詩人. 

"형태의 닮은 것으로 그림을 말한다면 아이들이 보는 것과 비슷하고, 詩를 지음에 반드시 이러한 詩라야 한다면 그것은 詩人(시인)이 아니라는 것임을 알겠구나!" 

라 하였다. 

이것은 詩와 畵(화)를 말할 때 형태를 달는 것[形似]을 그다지 귀하게 여기지 않음을 강하게 강조한 말이다. 

이 포스팅의 제목인 "不似之似(불사지사)"라는 구절은 雲南田(운남전)이란 사람이 그림을 論(논)하면서 처음 제창한 구호이다. 

즉, "같지 않으면서도 같은 경지"라는 뜻이다. 

그림과 글씨는 같은 원류[書畵同原(서화동원)]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이치는 하나로 통한다. 

東坡는 書[글씨]를 論하면서, 

我書意造本無法 

"내 글씨에 담겨진 筆意(필의)는 본시 법이 없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만든 것이다." 

라 하였다. 

또 말하기를, 

苟能通其意, 常謂不學可 

"진실로 그 筆意를 通할 수 있으면 배우지 않아도 된다." 

라 하였다. 

이 말은 東坡가 제잘난 척하는 정도가 심하여 너무 극단으로 흐른 느낌이 없지는 않다. 솔직히 後人(후인)들을 속이려 하는구나 하는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學人(학인)들은 일찍이 書法(서법)에 "用筆(용필)"과 "結字(결자)"의 두 방면 이외에는 없다고 말한다. 이 두 방면은 마치 한 손에 양면이 있는 것처럼 본디가 하나이면서 들이요, 또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다. 즉, 畵論(화론)도 이와 같다. 

水墨畵(수묵화)나 文人畵(문인화)는 筆墨(필묵)을 제외하고서는 말할 수 없지만, 만약에 筆墨만 읊조리고 形似(형사)를 말하지 않는다면 筆墨 또한 분명치 않게 될 것이다. 

즉, 껍질 없이 터럭이 어찌 생기겠는가 하는 말과 같다. 

雲南田은 꽃 그림에 능하여 그것의 형태를 아주 닮게 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어찌 완전하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오히려 병통이 된다. 

그렇다면 왜 병통이 되는 것인가! 

그림이란 결국 그림이면서 동시에 藝術品(예술품)이다. 

예를 들어 난초를 그릴 때 그려진 난초는 어디까지나 진짜 난초를 대상으로 하고 筆墨으로 畵家(화가)가 자신의 영감을 가감하여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실물 난초와 그림으로 표현한 난초는 닮았을 뿐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배우는 과정에서는 일단 실제 사물과 닮으려고 애를 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림으로 그려진 것이 근본적으로 난초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雲南田이 말한 뜻은 사실대로 그리되 古人의 모범을 익혀야 한다는 것도 함께 말한 것이다. 

처음에는 古人(고인)의 모범을 익혀 그것과 아주 닮아야 한다. 

이런 과정이 쌓이고 발전하게 되면 어느 순간에 이르러 그림과 실물이 전혀 닮지 않게 되는데, 이 경지가 지나게 되면 오히려 다시 처음의 그것과 같게 되는 것이다.  

 

이 때의 경지는 그 형태가 같아지는 것[形似]이 아니라, 정신이 같아지는 것[神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 닮는다는 것은 그림 중에서 古人의 훌륭한 전통을 깃들게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創新(창신)"이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글씨를 처음 배울 때에도 이와 같은 것이니, 법첩을 곁에 놓고 공부를 할 때 법첩의 글씨와 꼭 닮으려 노력해야 한다. 

만약 결구가 내 눈에 보기 싫다 하여 무시해서는 공부를 모조리 망쳐 버리게 된다. 까닭은 내 눈이 높은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눈에 싫다 하여 그 글씨가 졸렬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난 안진경 글씨가 싫으니 구양순만 배우겠다." 

든지 이와 반대로 하여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이번 포스팅은 여기까지이며, 앞으로 여러 님과 함께 공부해 나갈 것을 약속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