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蘭
曲(곡) 알고 音(음) 알기[知音:벗]는 예로부터 어렵다네 거문고 그윽한 곡조 타는 이[鍾子期(종자기)]도 드물어
紫色(자색) 줄기 綠色(녹색) 잎 빈 골짜기에 자라면서 風霜(풍상)을 참고 견디며 한겨울을 지낸다네
蘭(난)을 치는 일은 어찌 보면 아주 작은 기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과 글씨를 쓰는 것과는 분명 그 차이가 있다. 우선 마음을 다잡는 것부터 다르며, 정신을 기르는 것도 다르다. 오래 묵은 벼루에 해묵은 먹을 천천히 갈아 볕살 밝고 바람 맑은 하루를 택해 화선지를 펼치고 붓을 가다듬어 맑은 물과 진한 먹을 번갈아 찍어 농담을 표현하노라면 어느덧 어제의 내가 아닌 듯이 느껴지는 것이다. 蘭을 침에는 기운을 우선으로 하고 정품의 먹을 사용하며, 물은 반드시 묵은 물이 아닌, 새 물이어야 하되 정갈한 샘물이면 더욱 좋다. 벼루 또한 먹 찌꺼기가 없어야 하고 붓은 엄연히 蘭 치는 붓으로 쳐야 한다. 그냥 어제 쓰다 대충 씻어 둔, 글씨 쓰는 붓으로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고서도 내 마음에 흡족한 蘭 그림 한 장 얻기 어렵거든 하물며 대충 해서야 어떻게 얻을 생각을 감히 할 수가 있으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