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窓淸供
무릇 사람이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다 벽(僻)이 생기게 마련이요, 벽이 없으면 수고로움도 또한 없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산수(山水)에, 혹은 화목(花木)에, 혹은 구마(狗馬)나 "환고[紈袴 : 귀족 자제의 의복]"에, 혹은 "사죽[絲竹 : 관현악(管絃樂)]"에, 혹은 술에, 혹은 차[茶]에 벽이 있어서 그 정(情)이 끌리게 되면, 마침내 은근히 주선하고 간곡히 포치(布置)하는 사이에 자기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필하여 교룡(蛟龍)이나 호표(虎豹)의 소굴에도, 풍정(風亭)이나 노사(露榭)에도 회피하지 않으면서 정신력을 소모하고 시청각(視聽覺)을 다하여 논(論)을 지어 칭송하는 한편, 좇아가고 싶어하고 또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한다. 이는 한때의 벽임에도 오히려 이러한데, 이것이 만약 글로 이루어진다면 천추(千秋)에 규칙으로 되어, 소년에서 장년(壯年)에, 장년에서 노년(老年)에, 노년에서 죽음에 이르도록 조석(朝夕)으로 몽상(夢想)이 오가고 자손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데가 없을 터이니, 이를 어찌 한때의 흥(興)에 의해 섭렵(涉獵)했다가 흥이 다했다 해서 그만둘 수 있는 일인가. 그러므로 세속에 얽매여 "낭함보질[琅函寶帙 : 진귀한 서적이란 뜻]"을 상서롭지 못한 것으로 여기고 성현의 말을 끝내 격외(格外)의 것으로 간주하는가 하면, 혹 동벽(東壁 : 문장(文章)을 맡은 별이름인데, 출세를 뜻함)의 영화를 위하여 "두어[蠹魚 : 서적 속의 좀인데, 서적을 뜻함]"를 사우[死友 : 정의가 돈독하여 죽도록 저버리지 않는 벗]로 삼는다. 그러나 아침에는 수족(手足)처럼 여기던 것을 저녁에는 원수처럼 미워하여, 이전의 전칙(典則)을 한때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는 도구로 이용하곤 하니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는 다름 아니라 그 운취(韻趣)의 깊지 못한 때문에 감고(甘苦)를 조절하지 못해서다. 경우에 따라 시의(時宜)를 얻어 운취로써 거둬들인다면 몸을 의지하고 시선이 닿는 데마다 다 유쾌하여 "팔삭 구구[八索九丘 : 모두 고서(古書)의 이름]"를 자기의 몸에서 탈락시킬 수 없는 물건으로 보아 여기게 될 것이다. | ||||
벽이 있으면서도 수고롭지 않고 또 벽이 있는 이와도 앞서기를 다투지 않아야만 남들도 기꺼이 양보할 것은 물론, 나더러 남의 좋아하는 것을 탈취한다고 이르지 않을 것이므로 내가 직접 실험할 수 있다. 그래서 서헌(書憲)을 만들어 동지들에게 기대하는 바이다. 대저 단란한 모임만을 빌어서 운취에 끌어들일 뿐, 규칙을 만들어 절제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벽에만 전락하게 되므로 나의 실수도 여간 크지 않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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