弗言
"道(도)"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聖人(성인)은 말 없이 "德(덕)"으로 상대방을 감화시키지만, 道를 어설프게 알고 있는 자는 말[言]로 상대를 애써 설득하려 든다는 뜻의 "弗言(불언)"이다. 여기에서 "弗"은 "不"과 더불어 "~하지 않다"의 "부정형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不"보다 "無(무)"의 뜻으로 해석해야 "老子(노자)"의 사상에 맞다. 『楚簡老子(초간노자)』에는 [눈알을 닫고 아가리를 다문다"의 "閉其兌, 塞其門(폐기태, 색기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帛本(백본)』과 『王弼本(왕필본)』에는 "塞其兌, 閉其門"으로 되어 있다. 이리 되면 [아가리를 다물고 눈알을 닫다]가 된다. 두 구절 모두 道를 닦기 위해 靜坐(정좌)하고 있는 道人(도인)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러면 왜 문을 닫으라고 하는가? 티끌 세상과 단절하고 그저 조용히 있으려는 의도라고 본다면 뒤의 구절인 "同其塵(동기진)" 즉, [티끌 세상과 함께 한다]라는 구절과 모순이 된다. 이 구절의 바른 해석은 어떤 것인가? 《진정 道를 깨우친 聖人이라면 아가리를 다물고[塞其門], 경솔하게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弗言]》 "눈을 감는다[閉其兌]"라는 말은 티끌 세상에서 부대끼며 살기에 보이는 게 너무나 많지만, 聖人은 아무것이나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讀 老 子 [白 居 易]
言 者 不 知 〃 者 默 此 語 吾 聞 於 老 君 若 道 老 君 是 知 者 緣 何 自 著 五 千 文
씨부리는 자는 알지도 못하고 아는 사람은 아가리를 다무네 이 말을 老子(노자)로부터 들었는데 만약에 老子가 안다는 그 사람이라 한다면 왜 무엇 때문에 직접 『德道經[道德經]』 五千字(오천자)를 지었을까
[ 芝 山 房 생 각 ] 나도 모르겠네! 여기서 "안다"는 것은 "道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또 "말을 한다"는 것은 "道에 관해 말을 한다"는 것이다. 道와 一體(일체)가 된 상태를 "玄同(현동)"이라 하는데, 이는 바로 老子 자신의 인생 철학이다. 그러니까 老子는 개인과 사회가 하나이면서도 각자의 특성이 살아 있어 하나 아닌 다양한 사회를 이상적인 것으로 본 게 아닌가? 道를 깨우친 道人이 세상을 멀리 벗어나 있는 게 아니라, 세상과 하나로 어울려 함께 하면서도 세속에 전혀 물들지 않고 의연함을 지키는 "道와 一體가 된 상태[玄同]"를 천하에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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