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筆♡揮之

隱者의 벗 소나무

권석낙 2019. 9. 22. 12:35

 

 

 

 



 

五 老 峰 前     白 鶴 遺 址

長 松 蔭 庭     風 日 淸 美

我 時 獨 遊     不 逢 一 士

 

                             五老峰(오로봉) 앞

                             白鶴館(백학관) 옛 터

                             키 큰 소나무 그늘 내려앉은 뜰

                             바람 맑고 아름다우니

                             때때로 나 홀로 거닐었지만

                             단 한 명의 선비도

                             만나 보지 못하고……!

 

 



 

偶 來 松 樹 下   高 枕 石 頭 眠

山 中 無 日 曆   寒 盡 不 知 年

 

                         소나무 그늘 아래

                         돌 베고 잠이 드니

                         달력 없는 이 산중에

                         추위 다 가도 세월 가는 줄도모르고

 

 

     내가 西山(서산)에 육 년을 머물러 있을 때

     서쪽 산 위에 외로운 소나무 한 그루 있었더랬지

     나직히 깔린 아침 안개 따라 다락을 감싸안고

     부슬부슬 비님 따라 洞天(동천)을 오고 갔다네

     하늘이 지어 낸 이 곳을 나의 반려로 삼았었는데

     이제는 계곡 물이 가로막혀 서로 바라보고만 있구나

 

 



 

 

松 下 問 童 子   言 師 採 藥 去

只 在 此 山 中   雲 深 不 知 處

 

                         소나무 아래 동자에게 물었다

                         네 스승님 계시느냐라고!

 

                        "제 스승님은요, 약 캐러 가셨다구요.

                         이 산중에 계시긴 한데요,

                         구름이 저리도 짙으니

                         어디 계신지는 알 수 없어요."

 

 

 ※ 俗人(속인) 나부랑이와는 만나지 않겠다는 "멋진 거절"이다.

      소나무 아래 동자 같은 똘똘한 요런 녀석 하나 제자로 삼았으면 더 바

      랄 것도 없겠다.

 

 


 

"소나무[松]"는 한국 사람 누구나 아끼고 좋아하는 나무이다.

솨아~ 하고 불어 오는 "솔바람 소리[松籟]"는 맑고 맑은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맑은 바람 소리를 듣다 보면 그 누구라도 塵世(진세 : 티끌 세상]를 벗어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들어가 숨어 살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陶淵明(도연명)은 이 소나무를 쓸어 안으며 知音[지음 : 벗]으로 여겼던가 보다.

 

옛날부터 소나무를 가까이 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세상을 달관하고, 초월적이며 隱者(은자)와 같은 삶을 누렸다.

丘長春(구장춘)이라는 全眞敎(전진교) 도사는 그의 『磻溪集(반계집)』에서 이 소나무를 隱者(은자)와 삶을 함께 하는 동반자로 표현해 놓았다.

 

오래 묵은 소나무는 그저 단순한 일반 나무가 아니라, 깊은 외로움 속에서 서로 위로하고 의지처가 되는, 숨어 사는 이들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 누구도 찾는 이 없는 산중에 헛된 세월을 잊고 잠들 수 있었던 것은 이 소나무가 바로 곁에 있어서일 것이다.

 

芝山(지산)을 한번 자세히 둘러 봐야겠다.

어디 참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 있으면 芝山房(지산방)을 그리로 옮기던가, 아니면 작은 나의 山房(산방) 뜰로 모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