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筆♡揮之

井中月

권석낙 2019. 9. 21. 21:06

 

井  中  月

 

 

李 奎 報 [1168 ~ 1241]

 

 



 

 山寺(산사)의 스님이 달빛을 탐내어

 물동이 속에 달도 함께 길었구나

 절간에 당도해서야 알게 되었지

 물동이 기울이면 달 또한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감 상]

 고려의 대문호, 李奎報의 시이다.

 조선 후기의 詩(시) 비평에 안목이 매우 높았

 던 南龍翼[남용익 : 1628~1692]은 이 詩를 고

 려조의 5언 절구 가운데 가장 우수한 詩로 뽑

 았다.

 "반야심경"에 등장하는 [色卽是空(색즉시공)]

 을 詩想(시상)의 뼈대로 삼았다.

 作詩(작시) 의도 또한 철학적인 세계보다는 깊

 은 산속의 스님과 저녁 우물 속에 비친 달빛

 이 빚어내는 脫俗的(탈속적)이고 고고한 분위

 기를 빚어 낸다.
 7언 절구 중에는 鄭知常(정지상)의 "送人(송

 인)", 5언 율시 중에는 李穡(이색)의 "浮碧樓

 (부벽루)", 7언 율시 중에는 陳澕(진화)의 "京

 都(경도)를 최고로 친다.
 어떤 이는 이 중에서 "陳澕"의 "京都"를 제외

 시키기도 하는데, 까닭은 요즘 사람들이 漢詩

 (한시)의 형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

 는 부분도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崔  岦 [1539 ~ 1612]

 

 



 

滿

 스님이 가서 우물 물을 긷는데

 물동이 속에 달빛도 함께 담는구나

 절로 돌아오니 길어 온 달빛은 보이

 지 않아

 응당 "色卽是空(색즉시공)"을 깨달았

 다

 

 

 [감 상]

 詩想 자체를 아예 李奎報(이규보)의 詩를 그대

 로 옮겨 온 것이다.

 [芝峰類說(지봉유설)]을 쓴 李睟光(이수광)은

 李奎報의 詩와는 가히 "天地[하늘과 땅] 차

 이"라고 혹평을 했다.

 짐작컨대 이 詩에서 "色是空[色卽是空]"을 표

 면에 드러낸 것 때문일 것이다.

 또 李奎報의 詩에서 맛볼 수 있는, 착착 감기

 는 韻律感(운율감)도 훨씬 떨어지고 詩에서 느

 낄 수 있는 詩風(시풍) 역시 밋밋하기 때문이

 리라!

 앞의 詩에 쓰인 韻(운)을 빌어 쓴 것임에도 느

 끼게 되는 맛은 이렇게도 다른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한 가지는 作詩(작시)

 를 함에 있어 그 사람이 지닌 재주가 천부적

 인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韻을 借韻(차운)하여 그럴 듯하게 베껴 쓴다

 고 하여 원래 詩에서 전달되는 분위기까지는

 가져올 수가 없는 것이다.

 

蔡 之 洪 [1683 ~ 1741]

 

 

滿



 

 山僧(산승)이 한밤중에 물을 길으며

 달빛마저 물동이에 옮겨 담는다

 오래 긷다 보면 그 달이야 응당 사라

 지겠지만

 맑은 달빛은 도리어 虛空(허공)에 가

 득한 것을……!

 

 

 [감 상]

 이 詩 또한 李奎報의 詩를 借韻한 것이다.

 그만큼 李奎報의 詩가 뛰어난 것임을 스스로

 증명해 준 셈이다.

 蔡之洪의 이 詩는 李奎報의 詩에서 맛볼 수 있

 는 참신하고 상큼한 맛은 없다.

 그러나 性理學者(성리학자)다운 진지함은 있

 다. 詩에 무게감을 싣는다 하여 더욱 뛰어난

 것이 되고, 내용의 깊이를 더해 준다 하여 빼

 어난 詩가 되는 것은 아니다.

 詩는 어디까지나 [詩다운 詩]라야 된다.

 어디 반드시 詩에서만일까?

 속에 든 것은 아무것도 없는 인간들이 거들먹

 거리며 무게감을 준다 하여 그 인간이 훌륭하

 게 보일 수는 없다.

 

 이 나라 정치판이나 재벌, 교수들 중에 이런

 부류의 "하찮고 같잖은 인간"이 어디 한둘이

 랴!

 

 

圖 畫 應 難 妙

篇 章 豈 得 工

只 疑 生 羽 翼

身 在 大 虛 中

 

                                                   그린다 해도 오묘한 풍경 다 그릴 수가 없는데

                                                   詩 쓰는 것으로 어떻게 재주를 다 부릴 수 있으랴

                                                   어느덧 이 몸에 날개가 돋아

                                                   훨훨 저 하늘을 나는 듯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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