井中月
井 中 月
| |||||||||||
李 奎 報 [1168 ~ 1241]
| |||||||||||
到 寺 方 應 覺
甁 傾 月 亦 空 | 山 僧 貪 月 色
幷 汲 一 甁 中 | 山寺(산사)의 스님이 달빛을 탐내어 물동이 속에 달도 함께 길었구나 절간에 당도해서야 알게 되었지 물동이 기울이면 달 또한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감 상] 고려의 대문호, 李奎報의 시이다. 조선 후기의 詩(시) 비평에 안목이 매우 높았 던 南龍翼[남용익 : 1628~1692]은 이 詩를 고 려조의 5언 절구 가운데 가장 우수한 詩로 뽑 았다. "반야심경"에 등장하는 [色卽是空(색즉시공)] 을 詩想(시상)의 뼈대로 삼았다. 作詩(작시) 의도 또한 철학적인 세계보다는 깊 은 산속의 스님과 저녁 우물 속에 비친 달빛 이 빚어내는 脫俗的(탈속적)이고 고고한 분위 기를 빚어 낸다. 인)", 5언 율시 중에는 李穡(이색)의 "浮碧樓 (부벽루)", 7언 율시 중에는 陳澕(진화)의 "京 都(경도)를 최고로 친다. 시키기도 하는데, 까닭은 요즘 사람들이 漢詩 (한시)의 형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 는 부분도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 |||||||||
崔 岦 [1539 ~ 1612]
| |||||||||||
入 寺 無 所 見
方 知 色 是 空 | 僧 去 汲 井 水
和 月 滿 盂 中 | 스님이 가서 우물 물을 긷는데 물동이 속에 달빛도 함께 담는구나 절로 돌아오니 길어 온 달빛은 보이 지 않아 응당 "色卽是空(색즉시공)"을 깨달았 다네
[감 상] 詩想 자체를 아예 李奎報(이규보)의 詩를 그대 로 옮겨 온 것이다. [芝峰類說(지봉유설)]을 쓴 李睟光(이수광)은 李奎報의 詩와는 가히 "天地[하늘과 땅] 차 이"라고 혹평을 했다. 짐작컨대 이 詩에서 "色是空[色卽是空]"을 표 면에 드러낸 것 때문일 것이다. 또 李奎報의 詩에서 맛볼 수 있는, 착착 감기 는 韻律感(운율감)도 훨씬 떨어지고 詩에서 느 낄 수 있는 詩風(시풍) 역시 밋밋하기 때문이 리라! 앞의 詩에 쓰인 韻(운)을 빌어 쓴 것임에도 느 끼게 되는 맛은 이렇게도 다른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한 가지는 作詩(작시) 를 함에 있어 그 사람이 지닌 재주가 천부적 인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韻을 借韻(차운)하여 그럴 듯하게 베껴 쓴다 고 하여 원래 詩에서 전달되는 분위기까지는 가져올 수가 없는 것이다. | |||||||||
蔡 之 洪 [1683 ~ 1741]
| |||||||||||
汲 久 明 應 盡
淸 光 却 滿 空 | 山 僧 夜 汲 水
移 月 積 貧 中 | 山僧(산승)이 한밤중에 물을 길으며 달빛마저 물동이에 옮겨 담는다 오래 긷다 보면 그 달이야 응당 사라 지겠지만 맑은 달빛은 도리어 虛空(허공)에 가 득한 것을……!
[감 상] 이 詩 또한 李奎報의 詩를 借韻한 것이다. 그만큼 李奎報의 詩가 뛰어난 것임을 스스로 증명해 준 셈이다. 蔡之洪의 이 詩는 李奎報의 詩에서 맛볼 수 있 는 참신하고 상큼한 맛은 없다. 그러나 性理學者(성리학자)다운 진지함은 있 다. 詩에 무게감을 싣는다 하여 더욱 뛰어난 것이 되고, 내용의 깊이를 더해 준다 하여 빼 어난 詩가 되는 것은 아니다. 詩는 어디까지나 [詩다운 詩]라야 된다. 어디 반드시 詩에서만일까? 속에 든 것은 아무것도 없는 인간들이 거들먹 거리며 무게감을 준다 하여 그 인간이 훌륭하 게 보일 수는 없다.
이 나라 정치판이나 재벌, 교수들 중에 이런 부류의 "하찮고 같잖은 인간"이 어디 한둘이 랴! | |||||||||
圖 畫 應 難 妙 篇 章 豈 得 工 只 疑 生 羽 翼 身 在 大 虛 中
그린다 해도 오묘한 풍경 다 그릴 수가 없는데 詩 쓰는 것으로 어떻게 재주를 다 부릴 수 있으랴 어느덧 이 몸에 날개가 돋아 훨훨 저 하늘을 나는 듯하구나
[和]
| |||||||||||
|
|
|
|
|
|
|
|
|
|
|
|